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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에 해당하는 글 : 8 개
2009.12.13 :: 그리스도의 몸
2008.02.16 :: 양형 영성체 10
2009. 12. 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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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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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다미아노가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에서 수련을 마치고
첫 서원을 위한 미사 중에 영성체를 하고있네요.
지금 그의 맘에 이는 대로 잘 살아주기만을
기도한다.


communion under both species

양형영성체란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미사 때 성체만 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신자들이 성혈을 모시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그럴 경우 생경한 느낌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큰 감동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에는 미사 때 사제와 교우들이 성체 뿐 아니라 성혈도 영하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먹는 당시의 풍습 그대로 미사 성제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양형영성체를 실시하였고, 이것은 중세기까지 아무런 변동 없이 그대로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라틴 전례에서 성체에 대한 과도한 신심과 성혈을 흘리게되는 사목적 문제가 겹치면서
성혈을 영하는 관습이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12세기에 이르러서는 성체만 모시게 되었습니다.
성체의 한 조각 안에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실존하기에 성체만 모시는 것 역시 아무런 교리 상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성체만으로는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고 성혈까지 모시야 한다는 이단이 나타나자
1415년의 콘스탄스 공의회는 평신도의 성혈성찬을 공식으로 금지시켰습니다.
더 나아가 1917년에 제정 발표된 교회법전은 교우들의 성찬은 빵의 형상으로만 실시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양형영성체를 부활하여 평신도들도 양형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 교황청의 여러 지침에 따라 교구장이 적절한 교리교육을 전제로 하고서
세례, 견진, 혼인, 서품, 서원, 독서직과 시종직, 선교사 파견, 병자, 노자 등의 미사나 예식 때에 성사를 받거나 서
원을 하는 당사자와 대부모, 부모, 교리교사 등에게 양형성찬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여 많은 사람들이 양형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성혈성찬을 완전히 허용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성혈을 흘릴 위험이 크거나 불편하거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 등 실천사목상 어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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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1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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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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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 09:31
聖家庭
성가정은 행복과 평화 가득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려움과 갈등이 가득하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처녀가 아기를 갖고,
요셉은 그런 약혼녀와 파혼하려고 마음먹고
그런가 하면 누울 자리가 없어 말구유에서 태어나는 예수.
그 예수는 강보에 싸여 칼날을 피해 도피하며 다녀야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군중 속에 있으려니 하였던 예수가 보이지 않아
하루 길을 다시 되돌아 가 성전에 있는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왜 이렇게 애태우느냐? 고 하자
왜 나를 찾느냐고 하며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할 줄을 왜 몰랐느냐며 오히려 부모를 힐책하는 버릇없는 아이
30세가 되면서 가출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들을 둔 마리아.
어머니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들을 둔 가정 보다 더 불행한 가정이 있을까 싶지 않다.
이러한 聖家庭을 보면서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고치지 않는 그런 가정이 성가정의 절대요소는 아님을 알게된다.
성가정은 무탈하게 성당에 잘 다니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리아도 요셉도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랐다.
예수도 그러하였다.
독불장군처럼 살았지만 바쁜 중에도 항상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성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왜 자기를 버리느냐고?” 버티다가
끝내는 ‘내 뜻대로 말고 하느님 뜻대로 하라“고 내어 맡김을 본다.

우리 주변의 실례를 들어보자.
결손아동을 돌보는 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는 어떤 수녀님의 이야기 이다.
아무리 정성을 드려도 아이들이 수녀님, 수녀님하고 부를 뿐
아이들이 일정 간격을 유지함을 느낀 수녀는
수녀복을 벗어버리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엄마라 부리기 시작하고
그런 말을 듣는 수녀님 자신도 마치 아이들의 엄마가 된 기분이 들어
더 가까운 정을 느끼게 되더라고 한다.
이처럼 “나는 수녀이니까”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하면,
즉 자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진정한 너와 나의 관계는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행복과 평화가 넘치는 聖家庭의 뒤안에는
"나"이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順命하는 자세가 있었음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가르침이 되리라 본다.

충남대 병원 원목실 신부님 강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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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1. 09:29
강론을 위해 입을 열자말자
뭘, 그리고 왜 오늘 성탄을 축하하는가? 하며 다짜고짜 물었다.

신부님이 3년여 폴란드에서 사목한 이야기를 하면 풀어나갔다.
폴란드에서 사목하며 여행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동포들이  체코에 온 이후 수년 동안 한 인 신부님과 미사를 지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에
딱해 보여 매주 프라하에 와서 미사를 집전해주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단다.
그 날부터 서너명의 신자를 위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12시간을 운전해서 폴란드 바르사바와 프라하를 오갔다고 한다.
폴란드는 겨울엔 아주 춥고, 눈이 많은 지역이라 어떤 땐 눈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일 때도 있었지만 그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를 3년여 하면서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한다.
받기에 익숙해 있는 그들이 야속해보여서 말이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오가기를 계속하던 중
체코에 있던 그들이 신부님이 오는 대신에 자신들이 한번 폴란드로 미사를 봉헌하려 왔다.
미사 한 시간을 봉헌하기 위해 12시간을 운전해서 바르사바에 당도해보니
그 간 신부님이 보여준 노력이 어떠하였나를 깨닫게 되었다며 그 간 보여준 신부님의 고마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고 한다.
그 순간 신부님이 갖고 있던 서운한 마음도 다 녹아 없어짐을 체험하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랑할 사람이 사랑 받을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성탄일은 예수님이 하늘의 옥좌에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신 날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그러기에 오늘은 복된 날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된 날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오늘 성탄일이 기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 각자에게 축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김홍식 시몬 신부.
폴란드에서 교포사목을 맡고 있는 중
충남대병원 교회의 성탄미사 강론을 요약.


추신 :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지만
         기쁨 없이 성탄을 맞이한 나에게
         심지에 불이 붙는 그런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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